드림/숌

봄이 오면

누군가의지인 2026. 1. 31. 20:15

벚꽃이 만발한 벚나무입니다

“하나마루 씨는, 착한 사람은 아니신 것 같아요.”
 
봄을 알리는 이른 벚잎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진다. 한 발자국 옆에서 보폭을 맞추어 걷는 걸음은 짐짓 경쾌하게까지 느껴진다. 봄기운이 완연한 뒷산의 풍경에 피는 아지랑이처럼 냉정한 마음의 한구석에도 벚꽃이 내려앉은 탓이다. 그 모든 걸음에는 습관처럼 소리가 없다. 타박타박, 나막신이 바닥에 끌리는 한 사람분의 발걸음 소리. 왜 그렇다고 생각해? 참을 수 없는 물음이 밖으로 터져 나온다. 자만하지 않았기에 착한 사람이라 여겨지지는 않았지만 냉정한 쇼자에몽이 하는 소리이다. 그가 자신을 그렇게 규정한 까닭을 묻고 싶었다. 그건 비단 1학년 하반의 착한 아이였던 쇼자에몽이 말한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를 하나마루 씨가 알아맞혀 보는 건 어떤가요?”
 
내기를 제안하는 눈은 총기가 아닌 다른 것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마침 하나마루 씨는 심부름이 있어서 인술학원으로 가는 길이죠? 그럼 딱 맞네요. 얇게 미소하던 쇼자에몽의 심중을 알 수 없어 눈을 가늘게 뜨면 그는 그조차도 기꺼워 빙그레 웃어온다. 꼭 알아맞혀 주세요, 하나마루 씨라면 분명 다른 친구들도 힌트를 줄 테니까.
그렇게 웃는 쇼자에몽은 그럼 갈까요? 하며 평소보다 밝은 낯으로 사뿐사뿐 걸어갔다. 기분 설레는 마음, 그것이 비단 봄바람의 탓만이 아니라는 것을. 하나마루는 떨리는 걸음으로 그 자취를 밟았다.
 
 
 

봄이 오면
W. 라타타

 
 
 
하나마루가 인술학원을 방문한 까닭은 간단했다. 봄을 맞아 새로 출시한 벚꽃 맛 경단의 맛을 홍보할 겸 가게의 매상을 높여주는 어린 닌타마들에게 후기를 묻기 위함이었다.
갑작스럽게 떨어진 낯선 시대의 바람도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는 법이다. 그는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웠으니 이 작은 가게에서 일하는 것은 그 일환 중의 하나였다. 벚꽃의 꽃잎을 으깨어 향을 낸다. 팥과 깨를 합쳐 반죽한 앙금에 향을 더하여 떡의 안쪽에 넣는다. 어린 닌타마들은 향기로운 벚꽃의 향과 물엿의 달콤함에 이끌려 꼬치를 하나둘, 집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단을 파는 일에 집중하기만 할 수 없는 이유는 쇼자에몽이 남긴 말이 계속 마음 한구석에 아른거리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착한 사람이 아닌 이유. 다른 사람도 아닌 쇼자에몽이 그렇게 말한 이유.
서운하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 될 것이다. 동시에 그 이유를 알아 맞추어보라는 쇼자에몽의 짓궂은 미소 또한 머리에 아른거린다. 하나마루는 쇼자에몽의 귀여운 도발에 기꺼이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와 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6학년 하반의 아이들이라면 하나마루가 아는 그 이상의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나마루의 발걸음은 6학년 하반의 기숙사로 이어진다.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곳은 인술학원의 역사 중 가장 소란스럽고, 또 그 어느 학생도 다가가지 않으려고 하는 곳이니까. 이유는 지극히 단순하다.
그들은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말썽꾸러기니까. 1년 후 도이 선생님이 선생직을 은퇴한다면 아마 6학년 하반의 탓이랴. 야마다 선생님은 날로 위를 부여잡는 시간이 늘어나는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곤 했다.
 
“예산안이……. 하…….”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회계위원회 위원장 카토 단조. 사흘 내리 철야를 했는지 눈가에 거뭇한 기운이 내려 앉아있었다. 그는 눈 아래를 짓무르며 6학년 하반 기숙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피곤함에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곧 넘어질 듯 예사롭지 않았다. 하나마루는 그의 주변으로 다가가, 그에게 포섭용 경단을 하나 내밀었다.
 
“어라, 하나마루 씨. 여긴 무슨 일이신가요?”
“고생이 많네 단조. 회계위원회 일이 많나 봐.”
“평소의 일이죠. 다들 사고를 치느라 예산안을 그렇게 제출을 안 하니까……! 곧 예산회의도 코앞인데……. 아, 당고 감사합니다.”
"아니야, 먹고 힘내야지. 그러고 보면 궁금한 게 있는데 답해줄래?"
“네, 무엇인가요?”
 
하나마루는 가볍게 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쇼자에몽에 관한 거야. 요즘 상태가 평소와는 조금 다른 것 같아서."
 
평소의 냉정한 그였다면 하나마루에게 그런 알아맞혀 보라는 말보다는 하나마루가 착한 사람은 아닐 거라는 말에 대한 이유를 늘어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쇼자에몽은 구태여 그것을 하나마루가 알아내 주기를 바랐다. “내가 왜 착한 사람이 아닌지에 대한 쇼자에몽의 생각이 궁금해…….”라는 질문은 스스로도 내뱉기 너무 무안하여 속으로 삼키며 달게 웃을 뿐이었다.
단조는 쇼자에몽을 자주 도왔다. 그런 그라면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희미한 기대감을 품고 바라보고 있자 그는 들고 있던 예산안을 여러 장 넘기며 미간을 찌푸렸다.
 
“요즈음 예산회의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요. 쇼자에몽의 상태는 평소와 같은 것 같아요. 하지만 예산안은 밀리지 않고 제출한 것 같은데……. 한번 확인해 보시겠어요?”
 
하며, 단조가 학급위원회의 예산안을 내밀었다. 본디 학급위원회는 교장 선생님의 편제로 인하여 예산안을 제출할 필요는 없었으나, 약 5년 전 어느 학급위원회 대리들(오*마 칸*몽이라거나, 하*야 사*로이라거나)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예산회의에 참여하게 된 계보를 이었다. 쇼자에몽이 적은 예산안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바른 글씨체는 그 주인의 심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사소한 문제가 있었더라면,
 
“저기, 이건 뭐라고 적은 거야?”
“아. 학급위원회 활동에 상관없는 다과 비용이 많이 있어서 기각한 내용입니다. 이다음 예산안에는 학원장 선생님 보필 비용이라는 비용으로 올라와 있었기는 했지만…….”
단조는 말끝을 흐렸다. 마음만 같아서는 기각하고 싶었으나 다과를 먹지 않은 교장 선생님이 어떤 변덕을 부릴지, 그리고 그로 인해 따로 지출되는 예산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결국 쓰린 배를 움켜쥐고 예산안 지출을 허락해야 했노라며, 그 과정이 얼마나 불공평하다고 여겼는지를 항의하고 있었다. 물론 하나마루에게는 그까지 들을 의무는 없었다.
 
“그럼 수고해”
“감사합니다 하나마루 씨…….”
 
다크서클을 늘어트리고 흡사 귀신과도 같은 몰골로 멀어지는 단조를 보며, 하나마루는 다음 타자들을 정하기 시작했다.
 
“저는 쇼자에몽의 동실이니까요. 요즘 들어 고민이 아주 심해 보이더라고요. 밤마다 한숨을 푹푹 쉬기도 하고요. 아, 경단 꿀 떨어진다. 밖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나요?”
 
이스케는 특유의 결벽증을 지키면서도 쇼자에몽의 고민에 깊게 생각했다. 아마도 졸업이 다가오니 마음이 심란한 것 같다고. 그가 성에서 오는 취업 편지를 하루에도 몇 번이고 열어보았다가 닫는 것을 보았노라 증언했다.
쇼자에몽은 우수한 닌타마다. 이반만큼은 아니나 필기 성적만큼은 하반 중에서는 최상위에 속하고 실전은 그보다 더 우수하다. 그런 그가 취직의 문제로 인해 걱정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우와! 경단 맛있겠다. 그거 얼마에 팔 건가요? 다 먹어도 괜찮나요?”
“에헤에헤, 값이 좀 나갈 것 같은데! 하나마루 씨, 저에게 맡겨주시면 10%의 수수료만 받고 이 경단을 학원의 다른 사람들에게 강매를……. 그러면 총수입이…….”
“키리쨩. 신베. 하나마루 씨에게 실례되잖아. 앗, 불운으로 인해 경단이 다 바람에 날아가 버렸어!”
 
그다음, 란키리신의 3인조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옆에서 지나가던 후시키조가 “엄청난 스릴~” 이라며 자신의 뺨을 감싸 쥐었고, 이반의 덴시치는 역시 바보 하반이라며 그들을 놀리고 있었다. 경단 사태를 수습하기에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하나마루는 텅 비어버린 그릇을 들고 터덜터덜 걸었다. 힘없이 걸어가는 그 뒷모습을 보며 키리마루가 한마디를 던졌다. “다음에 제가 무료로 아르바이트 알아봐드릴게욧!” 이 상황에서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는 말이었다.
 
 
“후냐~. 경단이 별로 안 남았네요. 저희 민달팽이 씨들도 좋아할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최근 쇼자에몽이 무리하고 있는데, 하나마루 씨를 보면 무리를 그나마 덜 하거든요. 쇼자에몽도 이런 경단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민달팽이가 든 항아리를 뒤집어엎고 그들을 손에 올리며 키산타가 특유의 무해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의 낯은 평안했고 민달팽이들은 경단에 관심을 보이며 그 주변을 꾸물거렸다. 물론 민달팽이들이 정말로 경단을 먹을 리는 없겠지만, 하나마루는 그 움직임을 자세히 바라보다가 말의 내용에 눈썹을 조금 좁혔다.
 
“쇼자에몽이 무리를 해?”
“넹~. 마음에 차는 성이 없는 걸까요? 하지만 쇼자에몽이라면 냉정하게 자신의 상황을 분석해서 어울리는 성에 갈 거라구 생각하는데! 가끔 인술학원에 자주 들려주세요 하나마루 씨~. 쇼자에몽에게 하나마루 씨는 저에게 민달팽이 씨랑 비슷하니까요. 하나마루 씨가 자주 학원을 들러주시면 쇼자에몽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거예요~”
 
내가 민달팽이? 아니,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하나마루는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지으며 민달팽이들을 쓰다듬었다. 기분은 묘할지언정, 키산타의 증언은 그에게 확실히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최근 무리하는 쇼자에몽. 이스케의 증언과 합치면 취직을 바라는 성이 많아서 그 스트레스로 고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마루 씨는, 착한 사람은 아니신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이 하나마루를 착한 사람이라 여기지 않는 것과 무슨 상관인가?
 
“키산타. 만약 쇼자에몽이 나를 미워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 것 같아?”
“쇼자에몽이 하나마루 씨를요? 그럴 리가요~. 오히려 쇼자에몽은…….”
“누, 누구세요?? 지릴 뻔했어……. 키산타, 오늘……. 용구위원회 활동이 있는데…….”
“벌써? 아 맞다~ 오늘 용구위원회 활동 날이었지! 전 이만 실례할게요~.”
“응, 조심히 들어가.”
 
오히려, 쇼자에몽은.
흐려진 뒤엣말은 전해지지 못하고, 하나마루는 텅 빈 손으로 교정을 배회했다.
란키리신에 휘말려 경단 대부분은 다 사라지고 말았고 그나마 남은 것도 키산타에게 줘버린 참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어째서 쇼자에몽이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한 단서는 짚이지도 않았다. 한숨을 삼키며 걷는 하나마루를 보던 그림자 하나가 곧장 그의 뒤에서 나타났다.
 
“하나마루 씨! 고민이 깊어 보이시네요.”
“아, 헤이다유.”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낯을 하며 하나마루를 살피는 헤이다유의 모습에 호기심을 가지고 그 주변을 알짱거리던 1학년들이 순식간에 흩어져 자리를 떠났다. 그의 근처에 가면 분명 카라쿠리를 이용한 장난에 휘말릴 거라는 사실을 습득한 것이다. 하나마루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그보다는 쇼자에몽을 내준 숙제를 풀어내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사실은……. 이러이러 저러저러한 일이 있어서. 키산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었는지, 아니면 쇼자에몽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아?”
“흐음~. ”
 
헤이다유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분명 어떠한 장난을 기획하는 불길한 눈이었다. 반사적으로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려던 그를 붙잡은 헤이다유가 잠시 주변의 나무에 시선을 주더니 길게 웃었다. “하여간, 쇼자에몽도 솔직하지 못해서야!”
 
“이유를 알긴 해요. 알고 싶으세요?”
“응. 왜 그러는 거야?”
“이 밧줄을 당기면 알려드릴게요.”
 
헤이다유가 뒤로 반걸음 물러서며 천장에 매달린 긴 밧줄 하나를 가리켰다. 저것을 잡아당기면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 아는 것은 이곳에 오직 그 하나뿐이다. 꿀꺽, 하나마루가 침을 삼켰다. 설마, 학원의 외부인이자 민간인인 그에게 어떤 일을 저지르겠어?
 
다만 하나마루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헤이다유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사고뭉치인 6학년 하반의 일원이라는 점. 개 중에서도 카라쿠리로 인해 예상하지 못할 변수를 만들어 낸다는 점. 헤이다유와는 가능하면 자주 얽히지 마세요. 간혹 경단 가게에 와서 하나마루의 말벗이 되어주던 쇼자에몽의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것을 깨달은 건 이미 밧줄을 당긴 직후였다.
 
“어, 어, 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갑자기 튀어 오른 장판과 하늘 위로 치솟은 몸. 밧줄을 당기면 마룻바닥 아래 내장된 스프링이 튕기며 사람을 높이 허공으로 띄어 올리는 함정은 무로마치의 기술력으로는 이루어낼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이라. 아래에서는 자신을 받아내려고 하면서도 자꾸 담벼락 근처에 있는 나무를 힐긋거리며 여유롭게 웃는 헤이다유의 모습이 보였고, 소리를 듣고 하늘을 본 다른 닌타마들의 경악한 시선이 보였다.
 
원망할 거야.
 
원망할 거야!!
 
이 거리에서 추락하면 적어도 팔다리 중 일부분은 골절된다. 헤이다유가 받아주긴 하겠지만……. 약 5초 전, 밧줄을 당기던 자신을 저주했다.
지지면의 상실, 부유감, 추락, 선뜩한 공포, 질끈 감은 눈, 가득한 어둠, 그다음은.
 
“괜찮으신가요 하나마루 씨?”
 
느껴지는 것은 예상했던 딱딱한 바닥 면이 아닌 누군가가 자신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받아주는 손길이었다. 헤이다유의 것이라고 치기엔 조금 더 낮고 차분하며, 결정적으로 훨씬 더 익숙한 목소리였다. 하나마루는 조심스럽게 공포로 닫았던 눈꺼풀을 다시 뜬다. 시야를 가득 채운 밤색 눈. 따뜻한 걱정을 담아 오롯하게 하나마루만을 바라보고 있는.
쇼자에몽은 양팔로 하나마루의 무릎 뒤와 등을 단단히 받치고 있었다. 어디선가 단숨에 뛰어온 탓인지, 아니면 아는 사람이 다칠 뻔했다는 이유에서인지 그 숨은 평소와 다르게 다소 거칠어진 감이 있다. 쇼자에몽은 높은 곳에서 사람을 받아내느라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낸 자신의 몸보다 하나마루를 먼저 살피고 있었다
 
“다치신 곳은요? 하늘로 떠오르며 어디 스친 곳은 없나요?”
“으응, 난 괜찮아.”
“제가 지켜보고 있기에 망정이지. 하나마루 씨는 덜렁거리니까 도무지 시선을 뗄 수가 없다니까요. 그리고 헤이다유.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볼래?”
“미안~. 뭐, 네가 하나마루 씨를 받아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 정 안 되면 내가 받고.”
“그건 안 돼.”
 
딱 잘라 말하며 무어라 더 이야기하는(아마 학급위원장으로서 민간인에게 사용하는 카라쿠리의 위험성이나, 그가 얼마나 부주의 한가에 관한 훈계일 것이다) 쇼자에몽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지만, 하나마루는 그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보아온 아이였다. 늘 의젓하고 냉정하여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아이. 이 세계로 오게 되어 처음 만난 인연이라는 각별함은 가지고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건. 그 어두운 밤색 눈동자에 오롯이 자신만이 담기고 있었을 때, 하나마루는 아주 짧지만 쇼자에몽이 담은 세상이 되어 있었다. 쇼자에몽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헤이다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야단치는 선생님들과 웅성거리는 다른 닌타마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두근, 두근, 두근.
 
누구의 것일지도 모르는 심장 소리에 가려져서.
 
‘저는 학급위원회 일이 있어서 잠깐 가볼게요. 그 전까지 꼭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맞혀 보세요.’
‘제가 지켜보고 있기에 망정이지. 하나마루 씨는 덜렁거리니까 도무지 시선을 뗄 수가 없다니까요.’
 
쇼자에몽. 분명 학급위원회 일이 있어 가본다고 하지 않았었나?
 
 
 
*
 
 
 
다사다난한 하루였다. 인술학원의 6학년 하반에게 휘말리면 뼈도 추리지 못한다더니, 타소가레토키 닌자군을 사로잡고 도쿠타케 닌자대를 1학년 시절부터 의도치 않게 격퇴해 온 그들의 소란은 그 상상 이상이었다.
하늘이 부끄러워 그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제아무리 봄이라고 하더라도 해가 지면 날은 쌀쌀해진다. 이 세상으로 오고서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건만 이러한 점만큼은 하나마루가 원래 살던 세상의 정취를 떠올리게 했다. 사계절이 뚜렷한 것, 이곳이 어쩔 수 없는 지구라는 것, 여전히 봄의 밤은 차갑다는 것.
 
“감기 걸릴지도 몰라요”
 
자신의 등을 덮는 옷가지에 상념에서 퍼뜩 깨어났다. 언제부터였을까? 하나마루가 경단 집으로 홀로 돌아가지 않게 된 나날은. 어느 날에는 1학년 하반의 아이들이 시끌벅적하게 곁을 지켰고, 어느 날에는 학급위원회가 외부 손님을 바래다준다면서 그와 함께 경단 집이 있는 곳까지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모든 일행에는 쇼자에몽이 웃으면서 하나마루의 뒤에, 때로는 앞에, 그리고 바로 옆에. 당신은 자주 넘어지니 그 길을 닦아주어야 한다면서, 넘어지면 그가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뻗어주던 그는 어느덧 함께 걸으며 하나마루가 넘어질라, 중심을 잃은 몸을 먼저 붙잡아 끌어당겨 지탱해 주는 법을 배웠더라.
허리께에 겨우 오던 아이의 키는 어느 순간 하나마루를 추월해 있었다. 자신의 등에 걸쳐진 심록색의 옷가지는 더는 어린아이의 옷이 아니라 성인에 가까워지는 한 닌타마의 시간의 크기였다.
 
“그래서 이유를 좀 아시겠나요?”
 
즐거운 듯 웃는 쇼자에몽을 보며 하나마루는 오늘 하루 내 있던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유달리 학급위원회는 외출 경비가 많았다. 다과의 구매율이 높았던 것은 아마 교장 선생님의 비위를 맞추려는 의도도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을까? 쇼자에몽의 글씨는 단정하여 단조의 것과는 쉽게 구별된다. 그곳에 적혀있던 다과는 분명 일전 하나마루가 요즘 유행 중인 것이라며 보고 미소하던 것이다.
취직에 대한 걱정으로 평소보다 불안정하다는 주위의 증언이 많았다. 하지만 키산타의 말마따나 그는 이성적이고, 취직에 대한 걱정보다는 그에 비롯하는 다른 부가적인 것으로 인해 우려하고 고민하고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지금의 그에게 가장 잘 맞는 성을 찾는 것. 예를 들어, 졸업 이후에 누군가를 더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될 것 같아 고민하는 것이라면 어떤가? 가령, 휴가를 자주 주는 성이라거나, 아니면 아예 이 학원 근처의 성에 프로 닌자로 취업하여 지근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자 곧장 달려와 구해준 쇼자에몽.
제아무리 닌자라고 해도 닌타마는 닌타마. 하늘을 날았다가 떨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 하나마루를 받아내려면 그의 곁에 있어야 했다. 쇼자에몽은 학급위원회의 일로 먼저 자리를 비운다고 했으나 딱 그때 하나마루를 발견했다고 하기엔 그의 눈에는 놀람과 당혹감보다는 안도감이 먼저 서려 있었으며, 그 범인인 헤이다유를 정확하게 짚어냈다. 당사자인 헤이다유 역시 쇼자에몽이 구하러 올 것이라는 명제를 믿고 행한 일이었다. 그건, 다시 말해 헤이다유 역시 쇼자에몽이 하나마루의 근처에 내내 곁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단순히 자주 넘어지기 때문인 건가?
아주 만약에,
쇼자에몽이 하나마루가 먹고 싶었던 다과를 예산안에 끼워 넣은 것이라면. 그가 하나마루와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여 졸업 이후에도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성을 고려하느라 그렇게 힘들어 보인다고 주변인이 말했던 것이라면. 그가 하나마루가 학원에 온 이후로 학급위원회의 일을 하러 간다면서도 내내 그 곁을 맴돌고 있는 것이었다면.
 
‘키산타. 만약 쇼자에몽이 나를 미워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 것 같아?’
‘쇼자에몽이 하나마루 씨를요? 그럴 리가요~. 오히려 쇼자에몽은…….’
 
예를 들어서.
그다음에 올 단어가, 미워할 리 없다는 것에 대한 아주 명확한 대답이라면.
 
“쇼자에몽, 그건 네가…….”
 
쇼자에몽은 하나마루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자신이 살피고 도와주고 싶다고 온정 어린 말을 건네면서도 결코 하나마루보다 생각을 앞서지 않았으며, 차라리 자신을 자책하는 것을 선택하지 하나마루에게 그 비수를 돌리는 일은 없었다. 늘 도와야 하는 쪽은 자신이면서도. 자신이 그를 돕는 일이 지극히 당연하고 사랑스러운 일인 것처럼.
 
“날, 좋아하기 때문이야?”
“정답이에요, 하나마루 씨.”
 
마치 정답을 맞힌 아이를 달래는 투다. 쇼자에몽은 그 얼굴에 가득 미소를 머금는다. 정적이 일고
 
“하나마루 씨는 착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그야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으면서도.”
 
쇼자에몽은 기분 좋게 웃었다. 멀리서 꽃내음이 봄비처럼 흩어져 떨어졌다. 그 광경이 눈이 부셔 하나마루는 눈을 감는다. 깜빡, 다시 눈을 뜨면 시야를 가득 채운 사랑스러운 얼굴이 단숨에 거리를 좁혀온다. 입술에 부드러운 감각이 맞닿으면 서로의 눈에는 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제야 하나마루는 실감한다. 자신의 아주 어렸던 아이에게, 어느 순간 자신이 까치발을 들어야만 그와 수평의 눈높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한참 동안 이어진 입맞춤의 끝에 먼저 고개를 물린 것은 하나마루였다. 하지만 쇼자에몽은 자신이 잡은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팔을 허리에 감아 하나마루를 끌어당긴 쇼자에몽이 나직이 속삭였다.
 
“지금도 제게 당신의 마음을 알려주지 않잖아요.”
 
봄이 오면 살얼음이 녹고 흰 눈이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따스한 봄이 피어난다. 두 번째 입맞춤은 첫 번째의 것보다, 그리고 경단보다 더 달콤했다. 하나마루의 뺨과 쇼자에몽의 귀가 벚꽃색으로 완연하게 물들었다.


지인에게 넣은 커미션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려야 하는 글이라 같이 읽으려고 가지고왔습니다 제 사진과 멋진 글이 함께 있다니 매우 기쁘네요 헤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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